어떤 음식이 한 사회의 뼈대라고 주장하려면, 그 음식이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곰탕에는 그 증거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음국, 고음탕, 곰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곰국은 『능소주다식 조석상식발기』에 '고음탕'으로, 『시의전서』에 '고음국'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뒤의 조리서들에서는 '곰국'으로 표기된다. 『시의전서』는 1800년대 말에 만들어진 조리서로, 1919년에 상주 지역에서 필사본으로 전해졌다.
그 조리법이 인상적이다. 큰 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다리뼈, 사태, 도가니, 꼬리, 양, 곤자소니, 그리고 전복과 해삼까지 넣어 은근한 불로 오래 고아야 국물이 진하게 우러난다고 적었다. 소 한 마리의 여러 부위에 바다의 재료까지 더한, 그야말로 공을 들인 국물이었다.

궁중의 상에도, 장터의 솥에도 같은 이름의 국이 있었다.
궁중에서 장터까지
곰국은 궁중에서 팥수라와 짝을 이루는 음식으로 올랐고, 동시에 주막과 장터의 음식점에서 널리 팔렸다. 가장 높은 상과 가장 붐비는 길거리에 같은 국물이 있었던 셈이다. 계층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 음식은 드물다. 그리고 그런 음식이 한 사회의 공통 기반이 된다.
오늘날 한류를 소비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거대한 공연장의 무대와 동네 카페의 팬 이벤트가 같은 노래를 공유한다. 위와 아래, 공식과 비공식을 가로지르는 연결. 곰국이 수백 년 동안 해 온 일이 바로 그것이다.

기록으로 본 곰탕
- 『능소주다식 조석상식발기』 — 고음탕
- 『시의전서』(1800년대 말) — 고음국
- 이후 조리서 — 곰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