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뼈대는 한 사람이 만들 수 없다. 여러 세대가 같은 일을 이어 가야 생긴다. 곰탕에는 그런 계보가 살아 있다.
1910년, 나주의 장터
전남 나주의 하얀집은 1910년 장터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던 식당에서 시작했다. 증조모에서 시작된 가업이 4대째 이어지고 있다. 나주곰탕은 지금 하나의 지역 명칭이자 장르가 되었다. 한 가게의 국물이 한 지역의 이름이 된 것이다.
1939년, 청계천변에서 명동으로
서울의 하동관은 1939년 청계천변 수하동에서 문을 열었고, 청계천 일대 재개발로 2007년 명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소가 바뀌어도 국물은 이어졌고, 하동관은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이름을 올렸다.

장소가 바뀌어도 국물은 이어진다. 그것이 계보다.
그리고 바다 건너
새 가지도 자란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돼지곰탕으로 알려진 옥동식은 2022년 뉴욕에 진출해 1년 만에 뉴욕타임스가 꼽은 '올해 최고의 뉴욕 요리 8선'에 이름을 올렸다. 곰탕이라는 틀이 세계의 도시에서도 통한다는 증거다.
뼈대가 되는 음식에는 두 가지 힘이 있다. 오래 버티는 힘과 새 가지를 치는 힘. 100년 넘은 노포와 뉴욕의 새 가게가 같은 이름 아래 있다는 것은, 곰탕이 과거의 음식이 아니라 계속 자라는 뿌리라는 뜻이다. 김포공항 곁에서 11년의 연구 끝에 문을 연 곰바로곰탕도 그 뿌리에서 뻗은 가장 젊은 가지 중 하나다.

곰탕의 계보(보도 기준)
- 1910 — 나주 장터 식당에서 시작한 하얀집
- 1939 — 청계천변 수하동의 하동관(2007 명동 이전)
- 2022 — 옥동식 뉴욕 진출
